“240만 원은 좀 비싼데.”

망설이던 순간, 다른 숫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24개월 무이자. 월 10만 원.”

갑자기 살 만해집니다. 가격은 그대로인데 마음은 달라졌습니다.

240만 원짜리 물건이 필요한지를 따지다가, 매달 10만 원을 낼 수 있는지를 계산하기 시작한 겁니다.

저는 할부가 소비를 늘리는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가격을 깎지 않고도 구매 결정을 바꿉니다.


큰돈을 작은 생활비와 비교하게 만든다

240만 원을 한 번에 낸다고 생각하면 통장 잔액부터 떠오릅니다. 다른 제품도 찾아보고, 지금 바꿔야 하는지 고민합니다.

그런데 월 10만 원이라고 하면 비교 대상이 달라집니다.

“배달 몇 번 줄이면 되겠네.”

상품 가격을 따지던 생각이 생활비 조정으로 넘어갑니다. 구매할 이유보다 구매할 방법을 찾게 됩니다.

이런 가격 표현은 오래전부터 연구됐습니다. 존 구르빌의 1998년 연구는 큰 비용을 하루 단위의 작은 금액으로 제시하면 소비자의 평가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실제 결제 방식을 바꾸지 않고 표현만 나눠도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연구 출처]

할부는 여기에 실제로 돈을 나눠 내는 편리함까지 더합니다.


무이자는 이자를 없애줄 뿐이다

두 노트북의 구매 조건을 비교하는 여성

물론 필요한 물건을 무이자로 나눠 사는 것은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당장 큰돈이 빠져나가는 부담을 줄일 수 있으니까요.

다만 ‘무이자’와 ‘저렴하다’는 같은 말이 아닙니다.

가령 두 제품을 24개월 무이자로 산다고 해보겠습니다. 아래는 계산을 위한 예시입니다.

제품 가격월납입금
180만 원7만5천 원
240만 원10만 원
차이월 2만5천 원

매장에서 들으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한 달에 2만5천 원만 더 내면 좋은 걸 사는데.”

하지만 추가로 쓰는 돈은 60만 원입니다. 더 좋은 기능에 60만 원을 낼 의향이 있는지 물으면 대답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판매자는 월 차액으로 설명하고, 소비자는 총차액도 함께 봐야 합니다.


하나씩 살 때는 괜찮았는데, 결제일에는 모인다

월별 청구서와 계산기로 할부 지출을 점검하는 남성

할부 한 건은 감당할 만합니다. 문제는 다른 구매가 겹칠 때입니다.

노트북 월 10만 원에 다른 가전 할부 8만 원, 가구 할부 7만 원이 더해졌다고 해보겠습니다. 각각은 작아 보여도 매달 25만 원입니다.

물건을 살 때는 따로 결정했지만, 돈은 같은 월급에서 나갑니다.

이미 산 물건이 익숙해진 뒤에도 납부는 계속됩니다. 새로 사고 싶은 것이 생기면 쓸 수 있는 돈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이번 달은 별로 산 것도 없는데.”

그런데 명세서에는 지난달보다 더 오래된 선택들이 남아 있습니다.


낼 수 있는 금액보다, 살 만한 가격인지 먼저

저는 할부 개월 수를 고르기 전에 총액으로 구매 결정을 먼저 끝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40만 원을 주고 이 제품을 살 것인가?”

그 답이 ‘그렇다’라면, 일시불과 할부 중 유리한 방법을 고르면 됩니다. 반대로 월납입금을 본 뒤에야 사고 싶어졌다면 한 번 더 생각해볼 만합니다.

특히 상위 모델을 권유받을 때는 “월 얼마 차이”를 전체 기간으로 곱해보면 됩니다. 그 돈을 더 낼 만큼 기능이 필요한지가 핵심입니다.

할부는 필요한 물건의 결제를 편하게 해줍니다. 하지만 필요하지 않았던 물건까지 필요하게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월 10만 원을 낼 수 있다는 것과, 그 물건에 240만 원을 쓸 이유가 있다는 것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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