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면 실컷 쉬어야지.”

출근하기 싫은 아침마다 하던 말입니다. 그런데 퇴직이 가까워지면, 쉬겠다는 말보다 다른 질문이 늘어납니다.

“나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생활비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생활비 걱정이 줄어든다고, 그 질문까지 사라질까요?

저는 퇴직 준비에서 자주 빠지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를 모았는지는 계산하지만, 회사 밖에서 어떤 하루를 보낼지는 뒤로 미룹니다.


월급에는 돈만 들어 있지 않았다

회사에 다니면 아침에 일어날 이유가 있습니다. 만나야 할 사람이 있고, 오늘까지 끝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귀찮던 전화도,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퇴직하면 월급과 함께 이 일상이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홀가분해도, 시간이 지나면 약속 없는 평일이 낯설 수 있습니다.

“오늘은 어디 안 나가?”

별뜻 없는 질문에도 괜히 마음이 쓰일 수 있습니다.

통계청의 2025년 고령층 부가조사에서 55~79세의 69.4%는 앞으로도 일하기를 희망했습니다. 이유는 ‘생활비에 보탬’이 54.4%로 가장 많았지만, ‘일하는 즐거움’도 36.1%였습니다. [자료: 국회도서관 국가전략정보포털]

물론 이 조사만으로 퇴직자의 속마음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일을 원하는 이유가 생활비 하나는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일은 돈을 벌게 해주고, 내가 아직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느낌도 줍니다.


다시 받는 월급이 작으면, 나까지 작아진 걸까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며 상담하는 중년 여성

문제는 재취업할 때 생깁니다.

예전보다 적은 급여를 제안받으면 계산이 복잡해집니다. 생활비에는 도움이 되지만, 선뜻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내가 몇 년을 일했는데, 이 돈을 받고 다시 다녀야 하나.”

그 마음을 단순히 눈이 높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전 월급에는 오랜 경력과 직책, 회사 안에서 쌓은 신뢰가 함께 반영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새 회사는 다른 질문을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일을 해줄 수 있습니까?”

이전 직장에서는 중요했던 경험도 새 업무와 맞지 않으면 높은 급여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직함은 없어져도,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다른 곳에서 쓰일 수 있습니다.

새로 제안받은 월급은 그 일의 조건이지, 지난 인생의 성적표는 아닙니다.

이 둘을 구분해야 다음 일을 고를 때도 덜 흔들릴 수 있습니다.


허전함을 채우려고 큰돈을 쓰지는 말자

퇴직 후 작은 가게를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문을 열고 손님을 맞고, 하루를 바쁘게 보내는 모습. 다시 ‘사장님’으로 불리는 일도 싫지 않을 겁니다.

여기서 저는 한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 가게가 돈을 벌 수 있을까?”

“내게 매일 나갈 곳이 필요한 걸까?”

둘 다 솔직한 마음입니다. 다만 두 번째 마음만으로 첫 번째 질문에 답할 수는 없습니다.

가게를 열면 월세와 관리비가 나갑니다. 손님이 적어도 비용은 줄지 않고, 생활비까지 가게에서 벌어야 한다면 부담은 더 커집니다.

내가 바쁘게 지내는 것과 사업이 잘되는 것은 다릅니다.

창업이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소속감이 필요해서 시작한 일에 퇴직금의 큰 부분을 걸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관심 있는 업종에서 먼저 일해보면 어떨까요. 손님으로 볼 때와 일하는 사람으로 볼 때, 같은 가게도 달라 보일 겁니다.


퇴직 준비는 통장 밖에서도 해야 한다

도예 교실에서 함께 배우고 웃는 중장년 참가자들

저는 퇴직 준비를 두 가지로 나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활비가 얼마나 부족한지 계산하는 일. 그리고 회사 밖에서도 꾸준히 할 일을 만들어보는 일입니다.

돈이 부족하다면 소득을 확보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하지만 외로움이나 허전함까지 더 많은 돈으로 해결하려 하면, 필요 이상으로 큰 위험을 감수할 수 있습니다.

새 일자리가 예전의 급여와 직함, 인간관계까지 모두 돌려줄 필요는 없습니다.

생활비는 일에서 보태고, 사람은 모임에서 만나고, 성취감은 배우는 일에서 얻을 수도 있습니다. 회사 한 곳에 모여 있던 것들을 조금씩 나눠 갖는 겁니다.

퇴직 후에도 일을 하고 싶다면, 그 마음을 숨길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무엇 때문에 일하고 싶은지는 알아야 합니다.

언젠가 “요즘 뭐 하세요?”라는 질문에, 예전 직함부터 꺼내지 않아도 되는 날.

퇴직 준비는 그날까지 생각해보는 일이라고 봅니다.

댓글 남기기